글
똘레랑스, 증오, 그리고 촛불시위
2009 이야기
2009/05/14 17:26
출퇴근 길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있는 요즈음 우연한 계기로 미디어몽구란 블로그 영상을 만났다. 생산적인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스포츠를 제외한 뉴스 사이트는 극도로 삼가는데, 택시 기사님의 생생한 인터뷰에 끌렸다. 마침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은 터라 인터뷰 내용의 현장성에 대한 가치를 인식할 수 있었다.
뒤 이어 만감이 교차하는 동영상을 봤다. 촛불 과잉 진압을 담은 영상이다. 며칠전 퇴근 길에 경찰서를 지나는데, 횡단보도 앞에 마치 거리 사진전마냥 처참한 폭도를 담은 사진이 늘어서 있었다. 플랜카드에는 폭력 시위를 알리는 자극적인 문구가 있었고, 전체적인 인상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기 보다 혐오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하는 듯 했다.
그런 전력이 있어서인지 동영상을 보는데 전경들이 불쌍했다. 진압에 대해 항거하는 시위대가 증오하는 대상이 전경일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이유 없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는 젊은 희생양 전경들이 폭발해서 화풀이할 상대를 찾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쓰인 시절에서 급격하게 뛰어 넘은 권위주의 청산의 잔재를 털기 위한 시간이 아닌가 싶은 주제 넘은 해석을 하게 한다.
영상 더 보기: [영상] 촛불 1주년, 시청광장에서 명동까지
영상과 관련한 내용을 메모해둔다.
하루 아침에 민주주의를 얻을 순 없음을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배운 터라 증오심에 휘둘리지만은 않는게 다행이다.
뒤 이어 만감이 교차하는 동영상을 봤다. 촛불 과잉 진압을 담은 영상이다. 며칠전 퇴근 길에 경찰서를 지나는데, 횡단보도 앞에 마치 거리 사진전마냥 처참한 폭도를 담은 사진이 늘어서 있었다. 플랜카드에는 폭력 시위를 알리는 자극적인 문구가 있었고, 전체적인 인상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기 보다 혐오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하는 듯 했다.
그런 전력이 있어서인지 동영상을 보는데 전경들이 불쌍했다. 진압에 대해 항거하는 시위대가 증오하는 대상이 전경일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이유 없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는 젊은 희생양 전경들이 폭발해서 화풀이할 상대를 찾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쓰인 시절에서 급격하게 뛰어 넘은 권위주의 청산의 잔재를 털기 위한 시간이 아닌가 싶은 주제 넘은 해석을 하게 한다.
영상 더 보기: [영상] 촛불 1주년, 시청광장에서 명동까지
영상과 관련한 내용을 메모해둔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하였다.
<중략>
그것은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중략>
그것은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137~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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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